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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노는 동양인과 서양인의 혼합체였다.

앵커링 마스터 2022. 6. 29. 0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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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노는 동양인과 서양인의 혼합체였다.

 

 

흉노 

 

중국 감숙서근처 기련산 일대에는 험윤이라고 불리는 흉노의 조상이 살고있었다. 스키타이가 사르마티안에 망한후 험윤과 동맹을 맺고 연합해서  흉노를 만든다

병신들은 흉노 그러면 환빠처럼 환장염병하면서  잘알지도 모르면서 흉노가 단일 민족인줄 안다. 근데 역사서를 조금만 뒤져봐도 흉노는 여러민족의 연합체이고 그중심이 투르크계인 험윤일 뿐이지만 사실상 험윤도 완전히 타민족(스키타이,갈족 ,선비족 등)을 지배한게 아니다. 니들도  동업하면 친구랑 늘 싸우잖아 . 유목민족들도 그랬어 이시발년들아  몽골제국같이 같은민족에 형제들끼리도 칸 승계때문에 쿠릴타이(회의)가서 싸우고 죽이고 지랄하는데 타민족연합체인 흉노는 안그랬겠냐? 

 

험윤이 위치한 지역상 환경적 특징때문에 유목지역에서 제일 성격더럽고 포악하고 군사력만 높게 되었다. 그래서 험윤이 흉노에서 중심이 되고 흉노란 말또한 험윤과 발음이 비슷하다. 

 

험윤은 아시아 유목민족과  백인유목민족이 만나는 중간이었다. 따라서 흉노는 동양인과 서양인의 혼합체였다.

스키타이- 이란계 백인유목민족 

갈족  - 현 위구르 조상으로 위구르쪽에 있던 백인 민족 

선비족 - 투르크족, 당나라 지배층의 조상 , 산서성 북쪽과 내몽골지역동쪽의 유목지역에 주로 거주

철륵 - 터키를 세운 투르크족의 직계조상으로 몽골 서북쪽에 거주 

 

 

 

 

흉노는 왜그렇게 강했나? 

일단 위에 말한대로 흉노가 한민족이 아니라 험윤 + 스키타이 + 선비+ 갈족 등 그일대 살던 수많은 유목민족의 연합체이기때문이다. 당연히 합치는데 군사력이 강하겠지?

 

 

지도를 보면 알듯이  흉노의 중심지는 다른 유목민족보다 더 엿같은 곳이었다.  고비사막등 사막이 많고  몽골의 남부지방같이 평야는 넓은데 농사짓기 힘든 땅이고 산도 적어서  정착하기도 힘들고  산을 기반으로 한 수비(성)도 불가능하다

 

따라서 타 유목지역( 위구르 ,카자흐스탄 ,부리야트,몽골 동부[선비족기원]) 보다 군사력이 세지게 된다.

일단 산이없다 - 이것이 강할땐 장점이지만 , 약할땐 엄청나게 치명적인 약점이다.  산이 적으니까 각지에서 타 유목부족이 침입하기 좋고 막을 곳이 없다.   

따라서 메소포타미아 지방처럼 외침에 약했을테니 여기에 오래 살던 험윤족은 갈수록 군사력이 강해졌을거다. 자주 싸우니까 

 

풀이 적다  - 몽골 동북, 서북쪽처럼 평원이라도 풀이라도 오지게 많으면 가축들도 많아서 먹고살기 낫다. 근데 흉노중심지는 풀도 적어서 유목하기도 힘들다. 즉 수렵(사냥,어업,채취)의 비율이 거의100퍼센트에 가깝기때문에  타 유목지보다  사냥할때 목숨걸고 했을거다. 따라서 화살한번 땡길때도 엄청난 기술이 길러지게 되었다.  이때문에 군사력은 올라갔다.

 

사막이 많다 - 4세기 이슬람교가 생기게 된 이유가  하도 사막지역이라서 부족간 통수치고 죽이는 일이 많아서 신을 가장해서 중재자가 필요해서 였다고 한다. 사막이면 물이 부족하고 물때문에 배신하는일이 허다했다. 그래서 사막부족들인 아랍,유대인 ,투르크족등의 후손들이 지금도 통수잘치고 성격이 불같고 지랄맞은거다. 먹고 살기힘들면 본능에 충실해진다. 그래서 애미(계모)랑도 씹질하고 새끼까야만한다. 

이처럼 흉노족도 사막이 많은 지역에 살다보니 성격이 갈수록  쓰레기같아졌다. 

 

 

진시황제 시발놈의 만리장성 -  원래 만리장성이남도 험윤의 땅이었는데 , 강제로 위로 밀어내고 거기다 토성을 쌓았다. 겨울이되거나 가뭄(1년이상가뭄)이 오면 농작물이 말라죽고 , 키우던 가축이 먹을만한 풀이없어서 가축도 뒤지기때문에 쳐먹을게 없다. 그때  황하 남쪽으로 내려와서 유목하거나 농작물 수확했는데 진시황제 시발놈이 트럼프처럼 벽을 친거다. 그러니 안그래도 가족들 굶어죽어서 제정신아닌 놈들이니 화낌에 내려와서 중국민가를 노략하고 여자는 강간하거나 보쌈해가고 ,먹을건 죄다 훔쳐갔던거다. 

이런짓을 수없이 하는데 군사력이 안강해질수가 있나? 

 

 

 

 

 

 

 

개씹같은 몽골 땅  

병신같은 단군할아버지가 터 잡으신 몽골땅 

몽골은 혹한,혹서 , 1년넘는 장기간의 가뭄, 국토반이상이사막인 사람살기 어려운 개같은 땅이다. 이런곳에 살다보니 사람들의 성격이 척박해지고 인의를 모르고 통수를 잘치고, 애미랑도 근친상간하게 되는거다. 

 

조드dzud -  재앙이라는 뜻  기상 이변으로 가축들이 떼죽음을 당하는 것 

검은 조드 - 가뭄으로 가축들이 물을 먹지 못해 떼죽음 당하는거

하얀 조드 - 눈이 지나치게 많이 와서 가축들이 떼죽음을 당하는 것

 

강(gan)  -집중적 가뭄

 

 

 

찬란한 스키타의 문화 -흉노는 스키타이의 꼬봉이었다 

스키타이 BC8세기~BC3세기 , 우크라이나 크림반도 일대에서 카자흐스탄에 있었던 국가

BC6세기 페르시아와 전쟁

BC3세기 같은 이란계 백인유목민족인 사르마티안에게 멸망후 동쪽으로 쫓겨난후 험윤과 합쳐서 훈연합체(흉노)를 만든다 

명목상으론  투르크계인 험윤의 지방제후들이었지만, 스키타이족은 사실상 독립된 민족이었다. 

 

 

 

 

 

 

 

 

 

 신라의 조상은 흉노가아니다. 신라및 가야 왕족의 조상은 스키타이계로 추정되고 유물또한 엄청나게 많이 발굴되었는데 내가 그유물들이나 동판에 얼굴을 보니 완전히 달랐다. 절대 같은 민족이아니다. 비슷하거나 영향은 받은건 부정할수없지만

일단 흉노란 말의 뜻부터 알고 개소리를해야한다.  흉노는  흉할흉 노예노 자로 흉한 노예란 뜻인데,  세상 어느민족이 자기보고 노예라고 칭하나? 개소리란게 여기서부터 드러난다. 그럼 왜 노자를 붙인것일까?  이당시는 중국 한나라 시대인데 한나라는 흉노족에 엄청나게 털렸다.  창업 시조인 고조 유방이 황제시절에 흉노에게 잡혀 죽을뻔한다. 

[참조- 한 고조 유방을 평성의 백등산에서 포위한 주체도 흉노이고, 천하의 미인 왕소군이 흉노에게 바쳐졌다고 기록되어 있다. ]

그래서 악감정에 중국에선 노예 노자를 붙인거고 원래는 훈족인데 여기 훈과 발음이 비슷한 글자인 흉자를 붙여서 만든게 흉노란 이름이다.  

흉노는 단일민족이아니다. 흉노는 아리아인, 투루크계,몽골계등이 섞인 다민족연합체였다. 물론 중심은 돌궐의 직계조상인 투르크계다.  아틸라대제에 의해 유럽으로 쳐들어간놈들또한 다민족이고, 중국북부 몽골유역에 살던 놈들또한 다민족이었다. 흉노는 단군조선과 같이 다민족 연합부족국가다. 중앙집권체제가 아닌 약한 연합국가다. 당시 철기도 제대로 나오기 전이었고 있긴했지만 굉장히 철이 물렀다. 그래서 중앙집권화가 될수없었다.

 

자다시 결론부터들어간다.  이 다민족 흉노족의 일원중 하나가 신라,가야 왕족의 조상인 스키타이족이다. 심지어 이 스키타이족 거주지로 추정되는 현 중국 내몽골 오르도스지역에서 발굴된 수많은 유물이 스키타이유물과 100프로 일치하고 이것은  돌궐의 직계조상인 흉노의 중심세력의 유물과 상당히 달랐다.

삼국사기에서 김씨의 조상이라고 하는 김일제는 스키타이족이고, 당시 연합부족인 흉노족의 일원이었다. 근데 삼국사기는 신라 왕족의 후손인 김부식이쓴 역사서다. 여기서 김부식은 흉노라고 적는다. 그리고 삼국사기에 흉노족을 비판하는 글을 많이 적는다. 근친상간했느니 이러면서 이런건  비판해야할문화라고, 근데 누가 자기조상을 노예라고 적을까? 그리고 김부식은 신라와의 왕손이라서 신라에게 유리한 기술만했다. 예를 들면 가야랑 전쟁해서 대패한건 아예 적지도않을정도로 신라쪽에 우호적으로 기술한 놈이 왜 흉노보곤  노예노자를 그대로쓰면서 비판적으로 기술했을까?  

흉노는 김씨의 직계조상이 아니기때문이다. 흉노의 중심은 투르크계로써 김씨조상과 완전 별개이기때문이다.

 

[참조 문무왕비문에 따르면 “(문무왕의 조상은) 투후로 하늘에 제사지냄이 7대를 이어졌고 15대조인 성한왕이다.(秺侯祭天之胤傳七葉...15代祖星漢王)”라고 밝히고 있으며, 또한 ‘대당고김씨부인묘명’은 이를 상세히 설명하고 있어 한나라에서 투후(秺侯)라는 벼슬을 받았던 김일제가 신라 김씨의 조상임이 널리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

 

 

스키타이가 사르마티안에게 멸망당한후 스키타이의 동쪽땅으로 이동한다. 그동쪽땅에는  험윤이라고 불리는 흉노의 조상이 살고있었다.

스키타이는 험윤과 동맹을 맺고 연합한다. 그래서 탄생한게 훈(흉노)다. 명목상으로는 투르크족인 흉노가 선우였지만, 실제로는 독립국이나 마찬가지였다. 당시 흉노의 유물을 보면 스키타이유물을 그대로 베낀수준에 불과하고 그수준도 엄청 질이 떨어진다.  스키타이가 주둔하던 내몽골 오르도스지역이 한무제때 곽거병장군에 의해서 점령당하고  그왕인 휴도왕이 살해당하고 , 아들인 김일제가 포로로 잡히자 그부근의 스키타이족은 모두 항복하고 한나라에 넘어간다.   

중국 역사서에선 5만명정도를 포로로 잡은것처럼 구라치지만, 항복한 숫자는 군인말고 민간인까지 포함한다면 30만이 넘을것이고, 포로로 잡혀서 중국에 인계된게 아니라,  오르도스지방에  그대로 살고 있었을거다. 

한 나라 역사서에 김일제가 마부였다고 하는것또한 구라다. 마부새끼가 어떻게 황제암살시도를 막나?  마부가 아니라 스키타이족이 기마민족이니까 마부로 거짓기술한거다. 

엄청나게 많은 스키타이 백성을 거느리고 있기때문에 황제의 암살시도를 막을수 있었고, 황제가 그를 회유해서 사위로 삼아서 자신의 권력을 든든히 하고 싶었을거다. 

후에 왕망이 스키타이랑 친인척이 된후 스키타이를 동원해서 반란을 일으킨것도 이러한 이유가 있다. 

 

왕망의 신나라가 망한후 역적이 된 스키타이 김씨세력들은 한번에  안휘성 경주로 이동한게 아니다. 산서성에 머물러서 금성이라는 성을 짓고 거기서 좀 버티다가 한나라의 공격으로 도망치게 된다. 

김알지는 삼국사기에 어린아이로 나오는데,  어린아이가 어떻게 시조가 되나? 어린아이를 데리고 계림에 나타난 사람이 있을것인데 생략된거뿐이다. 그사람이 성한왕으로 보인다.  성한왕星漢王에서  별성자를 빼면 한왕이 된다. 한왕은 한나라의 왕이란뜻이다. 이것은 성한왕이 왕망시절에 한나라에서 제후인 왕으로 있었다는 의미로 추정된다. 

 

알면알수록 놀랍지만, 스키타이 족과  스키타이족중 하나인 신라김씨는 대단하다. 고구려따위와 비교가 안된다.

 

 

 

 

 


스키타이 BC8세기~BC3세기 , 우크라이나 크림반도 일대에서 카자흐스탄에 있었던 국가

BC6세기 페르시아와 전쟁

BC3세기 같은 이란계 백인유목민족인 사르마티안에게 멸망후 동쪽으로 쫓겨난다

 

 

내몽골 오르도스지역에서 스키타이 유물 대량 발견

스키타이는 사르마티안에게 본거지를 뺏긴후 스키타이족의 일부는 오르도스로 이동하는데 당시 오르도스는 흉노의 관할이었다.

명목상 흉노의 제후로 들어가게 되는 스키타이의 한 부류가 신라의 김씨다

 

흉노 BC3세기~AD1세기

어라 스키타이 멸망시기랑 흉노 창립시기랑 BC3세기로 일치ㄷ

 

BC150년  휴도왕(흉노의 제후)의 아들 김일제  한무제 통치기에 한에 항복 

김일제가 한무제의 암살기도를 막아준 공로로 투후에 봉해지고 한무제의 사위가 되줄것을 요구받음,투후란 뜻 오르도스지역의 제후, 투가 오르도스 지방이란뜻

 

BC 57년  박혁거세가 新羅신라 세움

왕망 - 투후 김일제의 5세손인 김당의 이모부 , 

왕망의 신新나라  8~23년 , 왕망의 신나라와 한국의 신라의 신자가 같은 한자

 

AD8년 왕망과 같이 한나라에서 군사 반란을 일으킨후 신나라 세움

한나라왕족들이 대규모 반란시작하고 밀리기 시작하자  왕망과 스키타이족은  5천 결사대 만듦

한서 기록 - 하늘의 도움을 구하고자 애처로운 자를 뽑아 낭郞으로 채용했다. 이런 낭의 숫자가 5천명에 달하였다.

이 랑이 화랑(花郞)할 때의 랑과 같다. 5천명의 낭은 한서에 반란을 제압하기 위한 화랑같은 결사대인것이다.  우는자, 애처로운자를 뽑았다는것은 특수부대이다 보니까 죽기전에 울면서 싸운것을 자기입장에서 기술한것이다.

이결사대 문화는 코미타투스라고 불리는 아리안족의 문화다. 

한서 왕망전 - 교위 한위 왈 신실新室의 위엄으로 호로胡虜(흉노 오랑캐)를 병탄하는 것은 입안에 있는 벼룩이나 이(蝨)와 다름없습니다. 신은 바라건데 용감한 병사 5천 명을 얻는다면, 한 말의 식량도 싸지 아니하고 주리면 오랑캐의 고기를 먹고 목마르면 그 피를 마시면서 횡행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낭중郎中  - 한 나라의 기병특수 부대

23년 왕망이 광무제 유수에게 죽고 나라를 뺏기자 한나라를 도망쳐서  현 산서성 금성으로 이동

산서성 금성에서 중국  안휘성(양자강근처)의 신라 계림으로 이동

67년 김알지 신라계림에 도착  (석탈해 재임기간)

석탈해 재임기간에 김씨가 계림에 도착하자 왕인 석탈해가 직접 마중 나왔다는건 항복을 짧게 은유적으로 말하는것이다. 

왕이 뭔 마중을 나와? 어느왕이 손님온다고 마중나와?  그리고 지 아들 놔두고 김알지에게  태자자리를 양보했다고? 이것부터 전쟁에서지고 왕위를 헌납했다는 걸 감추기위해서 역사가가 개구라친 흔적이다

262년 미추이사금때 김씨가 군사력으로 내부정적을 제거하고 신라의 권력을 확실히 잡음

417년 눌지마립간때  김씨가 왕권독점권 확립

678년 경  신라+가야+당 연합군 VS 고구려+백제+왜 연합군

사실상 동북아시아 세계전쟁이라 불릴수 있는 전쟁이다.

당시 고구려는 말갈,거란,돌궐을 점령하고있었기에 이들과 같이 공격했기에 사실상 고구려 연합군이 우세였었다. 

신라는 당시 고구려 ,백제에 거의 질뻔했기때문에 어쩔수없이 선비족이 세운 당나라와 연합한것이다. 

선비족은 투르크계 민족이라서  스키타이가 이동해온 경로에 있었으므로 스키타이와 투르크의 문화양식은 비슷한면이 있어서 동질감이 있었다. 고구려는 투르크계보다 몽골계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었으므로 선비족은 고구려에 이질적으로 느꼈기때문에 선비족이 세운 당나라는 고구려와 사이가 안좋았다

 

935년 신라멸망 

 

1115년 김함보의 후손 완안 아골타가 금세움

금사(金史) 본기(本紀)에 기록된 내용-김함보가 신라 독립운동하다가 만주(몽골)로 들어가서 여진족 여추장과 결혼한후 여진족의 한부족을 점령하고 완안부를 세움 

1616년 아골타의 16세손인 누르하치가 후금(청나라) 세움 

아골타의 성  애신각라 [愛新覺羅], 아이신지료(만주어 발음) , 신라를 사랑하고 생각해라

淸(청) 태조 누루하치가 난 만주족의 한 부족의 이름

 

 

 

중국 복건성 용암시에 신라구(新羅區) 라는 구가 있다.

용암시에 홈페이지에는 이렇게 쓰여있다
신라구의 역사는 유구하여 당나라 개원24년(736년)에 신라현으로 설치되었다. 
면적은 2,677 평방미터이고 인구는 45만명이다.구슬어스에 실제로 존재하는 복건성 용암시 신라구의  위치

 

 

김정민 박사의 강의 내용

신라 왕묘에서 나온 유골의 DNA가  현대의 조선보다 우즈베키스탄인에 가까운걸로 나오는 자료다.

 

 

 

정사가 야사보다 신뢰도가 대체로 높다고 무조건 사실로 보면안된다.  짱개가 흉노라고했다고 진짜 훈족이름이 흉노족인줄알고 , 짱개가 동호라고했다고 동호(동호는 동쪽오랑캐로 부여다)라는 나라이름이 있는줄알고 헛소리한다. 

 

동호 東湖

짱개 기록에 동호에서 오환과 선비가나왔다고하는데   이는 고구려가 부여에서 나온거랑 같다. 즉 동호가 부여인것이다. 아니면 같은지역에 같은역사를 가진민족이 두개씩있다고? 개소리죠

흉노의 한 선우(왕)가  대흥안령 산맥을 넘어서 동호를 공격했다는 짱개기록이있다. 대흥안령 산맥 동쪽이 부여땅이다. 부여에 부여말고 또 다른 민족이 있다고 개소리죠 이런걸 믿는 식민사관  강단(대학) 역사학자들은 ㅄ이다.

 

 

오환烏桓 =고구려=고려=맥족=맥이족

까마귀 오자에 환웅할때 환자다. 오환은 고구려나 고구려의 전신국가를 말한다.  고구려의 상징이 삼족오에서 보듯이 까마귀다. 삼족오의 오자가 까마귀 오자이다.  역시 짱개들은 나라이름을 곧이 곧대로 안적고 자기입장에서 볼때 까마귀상징을 많이하고 전쟁에서도 깃발로 사용하니까 오환이라고 부른 것이다.  오환이 기록에서 사라진시기와 고구려가 강해진시기가 일치한다. 우연일까? 개소리지 우연은 고구려가 오환이기때문에 오환의 기록이 안나오는거지. 오환은 고구려가 번성하기직전에 붙여진 별명같은것이다. 근데 고구려가 강해지고 나라의틀을 갖추니까 짱개입장에서는 오환이라 부르기가 머하고 고구려의 본명인 고려라고 부른거고  그러다보니 오환기록이 안나오는것이다.

형이죽으면 형수를 취하고 데릴사위를 하는등 기록의 오환의 풍습은 고구려랑 일치한다. 우연이라고 ? 응 니가 ㅄ

 

선비鮮卑族

선이 조선할때 선자이다. 비는 천할비자인데 노비의 비자랑 비슷하다. 즉 조선노비놈들 이런뜻이다.누가 자기민족얘기할때 노예족이요 라고하나 ㅄ들아 짱개들말좀 걸러서듣자. 

 

신강자치구와 우즈베키스탄은 위구르족의 후손이다,  중국 영하 자치성은 서하의 후손으로 종교만 이슬람이지 아랍인의 후손이아니다.영하는 저족의 후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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